글번호
7362
분류
인문학탐방
작성일
2017.03.09
수정일
2017.03.09
작성자
yujin
조회수
602

한겨레/강신준 칼럼] 경제민주화 참뜻의 고전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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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강신준 칼럼] 경제민주화 참뜻의 고전 성찰
-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

   촛불 민심에 부응하는 참된 경제민주화는 결국 노동의 민주화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 민주화의 첫걸음도 노동자가 교섭의 주체로 권리를 보장받는 데에 있다. 독일의 경제민주화 첫 단추를 끼웠던 노동자 출신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민주화가 주체를 만드는 데 있음을 이렇게 강조하였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를 필요로 한다!”  

  
친노로 분류되는 문재인과 안희정이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를 굳혀가는 정세를 지켜보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실패이다. 역대 퇴임 대통령 가운데 국민들에게 가장 높은 호감을 얻고 있는 노무현은 막상 재임 기간에는 매우 인기가 없었고 새누리당에 너무도 맥없이 정권을 넘겨주었다. 그래서 그의 실패는 이후 많은 담화의 주제로 회자되었다. 높은 호감과 낮은 인기의 극명한 대비는 그의 실패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이 지금 중요한 까닭은 촛불 민심의 밑바닥에 1997년 이후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의식했던 것일까, 지난 총선에서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담당했던 김종인 의원을 전격 영입하였다. 그런데 김 의원의 경제민주화는 작년 6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스스로 밝힌 대로 “거대경제세력”인 재벌의 개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지난 12월19일 민주당이 “촛불시민혁명 입법정책과제”로 제시한 경제민주화 내용도 재벌 개혁을 가리키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는 곧 재벌 개혁을 의미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이 촛불 민심에 부응하는 것일지는 의심스럽다. 경제민주화의 참뜻이 원래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가 재벌 개혁으로 곧장 읽히기 어려운 까닭은 단순하다. 민주당이 제시하고 있듯이 주주의 권한과 공정거래를 강화하는 재벌 개혁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경제적 갑질이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갑질은 중소기업인 유성기업도 노동조합한테, 영세 자영업자도 알바생에게, 심지어 정규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똑같이 자행하고 있다. 경제적 독재를 상징하는 갑질은 재벌이 최정점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인 것이다. 당연히 재벌 개혁만으로 이런 사회적 관계를 바꾸기는 어렵다. 자본주의 초기에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운동으로는 노동자들의 영락을 막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경제민주화의 참뜻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의 역사적 기원은 프랑스 혁명 이후의 사회적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억압적인 절대주의를 타파하고 인간의 자유를 쟁취한 혁명 이후에도 억압적인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억압체제는 절대주의의 정치적 독재를 대신한 자본주의의 경제적 독재였고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대자본을 혁파하여 소생산자를 보호하자는 주장이 나왔고(우리의 재벌 개혁과 닮았다) 1830년, 1848년, 1871년으로 이어진 노력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들 혁명은 모두 실패하였고 그 실패에서 성공의 단서를 찾아낸 것이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독재의 본질이 생산수단(자본)의 독점에 있으며 독점의 형식은 사적 소유, 내용은 타인의 노동시간 탈취라고 요약하였다. 그래서 그의 경제민주화 처방은 자본의 사적 소유에 대한 규제, 노동시간의 단축이었다. 이 처방은 독일에서 실천에 옮겨져 150년 이상 이어졌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모델이 만들어졌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와 짧은 노동시간은 바로 이런 실천의 성과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있었다. 이들 의제는 모두 노동의제이고 이들 성과는 노동의 사회적 교섭을 통해 달성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 민심에 부응하는 참된 경제민주화는 결국 노동의 민주화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노동 민주화의 과제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객관적 상태가 아니라 주관적 의지로 만드는 사회제도이다. 따라서 민주화란 민주주의를 수행할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노동 민주화의 첫걸음도 노동자가 교섭의 주체로 권리를 보장받는 데에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옥에 갇혀 있고 산별노조의 교섭을 대기업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독일이 교섭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반면 미국 레이건이 관제사 노조의 교섭권을 와해시키며 경제적 불평등의 시대를 열었던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섭 때문에 감옥에 갇힌 노동자 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부 때였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새겨야 할 점이다. 독일의 경제민주화 첫 단추를 끼웠던 노동자 출신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민주화가 주체를 만드는 데 있음을 이렇게 강조하였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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